이상한 논리다. 천정배의 논리대로라면 노무현에게 배신당하고 실망했기 때문에 열우당을 떠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열우당이 노무현 사당이었다는 것인가?...그냥 야욕이 있어서 망쳐놓은 열우당으로는 다음 총선에서조차 국회의원 유지가 어렵게 될 것 같아 떠난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하지 않나?...
2007년 1월 27일 (토) 11:51 뷰스앤뉴스
'인간 천정배'가 '인간 노무현'과 결별하는 이유

"알고 보니 盧는 영남 패권주의자였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이 28일 탈당한다. 천 의원 탈당은 단지 열린우리당과의 결별만 의미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완전 결별을 의미한다. 천 의원의 결별 선언은 정치공학 차원을 넘어 도의적 측면에서 노 대통령에겐 더없이 쓰라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럴까.
세차례 크게 '인간 노무현'을 도운 '인간 천정배'
두 사람간 우정은 오랜 기간 정가에 '신화'처럼 전해져 왔다. '인간 천정배'는 정치에 몸담기 전부터 '인간 노무현'을 높게 평가해왔다. 특히 '지역주의 타파' 노력을 높게 평가해왔다.
천정배는 수도권인 경기 안산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3선의원이나, 그는 호남 골수 토박이다.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목포중, 목포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 사시를 수석입학-차석합격한 세칭 '목포의 천재'다. 그가 본격적으로 '인간 노무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인권단체인 민변 상임이사를 하던 90년대초. 그는 90년 3당 야합에 반대하고 '원칙'을 걷는 노무현에 매료됐다. 노무현은 알다시피 영남 골수 토박이. 천정배는 그러나 출신지역을 개의치 않았다.
천정배는 노무현이 1996년 제15대 총선때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가 낙선하자 다음해 자신의 법무법인 '해마루'에 들어오라 했다. 다음 재도전을 위한 충전 및 경제적 지원을 위해서였다. 노무현은 '해마루'에서 충전한 뒤 1998년 종로 재보선에 도전, 당당히 당선됐다.
천정배는 노무현이 대권 도전의 뜻을 굳히자 가장 먼저 그에 대한 공식 지원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대선 전해인 2001년 여름, 천정배는 부산에 내려가 공개집회에서 노무현 지지를 공식선언했다. 당시는 다음해 질풍노도같은 '노무현 바람'이 불 거라고 누구도 상상치 못한 시점이었다. 대부분이 이인제 주변에 몰려있을 때였다. 그러나 호남 토박이인 천정배는 영남 토박이인 노무현을 현역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지지했다.
천정배는 2003년 노무현이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도 앞장 섰다. 골수 호남으로선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그러나 그는 열린우리당 창당 명분인 '전국정당' 건설에 동의했고 상당수 호남으로부터 "탈레반"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노무현 대통령을 적극 지원했다.
천 의원이 평소 "노대통령이 나에게 빚을 졌으면 졌지, 내가 노 대통령에게 빚진 건 없다"고 말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노무현 대통령과 완전결별한다.
천정배 "알고 보니 노무현은 영남패권주의자였다"
천정배 의원은 왜 노무현 대통령과 결별을 택했나. 뒤늦게나마 남들처럼 '노무현 두들기기'를 통해 대권주자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
지난해 11월말 천 의원을 만나 그의 생각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최대 화두였던 부동산대란이 주제였다. 그는 부동산대란의 심각성과 본질을 알고 있었다. 분양가 폭리를 통해 수천억원을 번 시행업자 횡포도 알고 있었다. "소득이 있는 곳에 반드시 세금이 있어야 한다"며 분양원가 전면공개 지론을 폈고, 분양가 상한제에도 적극 찬성했다. 분양원가 공개에 극력 반대하는 강봉균 등 경제관료 출신들과도 결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2004년 4월 총선직후 "열배 남는 장사도 있는 법"이란 '속류 시장주의'에 기초한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공약 파기를 막지 못한 책임도 뼈저리게 통감했다.
정치 얘기도 했다. 그는 이미 당시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다. 그가 밝힌, 노 대통령에게 가장 절망하는 대목은 노 대통령의 "지역주의 타파" 주장의 허구이자 위선이었다. 그가 '인간 노무현'을 좋아했던 근간이 붕괴된 것이다.
그는 결정적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접하고 십수년간 가졌던 인간 노무현에 대한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했다. 대연정은 "영남 비주류의 영남 주류에 대한 러브콜에 다름 아니다"라고 그는 규정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반성하고 새롭게 만들려는 정당을 노 대통령이 "지역당"으로 매도하며 열린우리당 간판에 연연해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했다. 최종적으로 그가 결론내린 노무현 대통령은 "영남패권주의자"이다.
이것이 천 의원이 밝힌, '인간 천정배'가 '인간 노무현'과 결별을 결심한 근원이다.
"열린우리당 수뇌부도 책임을 져야"
천 의원은 김근태-정동영 등 열린우리당의 이른바 대권주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김근태-정동영 모두를 "열린우리당 실패의 공동책임자"로 규정했다. 대선 출마 운운 자체를 어불성설로 여겼다. 자신을 포함한 이들이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열린우리당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들 대신 '제3 후보'를 생각하고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탈당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연말연초 드러난 노 대통령의 속내를 보고 결단을 내린듯 싶다.
그는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탈당 선언도 냉소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탈당 선언후 흔들리는 열린우리당내 정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차갑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흔들림으로 보기 때문이다.
천 의원은 28일 탈당한다. 동반탈당 의원 숫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원내교섭단체를 꾸리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천 의원 탈당으로 열린우리당, 특히 노 대통령은 치명적 상처를 입게 됐다는 것이다. 그 상처는 다름아닌 '정체성'이다.
/ 박태견 기자 (tgpark@viewsnnews.com)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이 28일 탈당한다. 천 의원 탈당은 단지 열린우리당과의 결별만 의미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완전 결별을 의미한다. 천 의원의 결별 선언은 정치공학 차원을 넘어 도의적 측면에서 노 대통령에겐 더없이 쓰라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럴까.
세차례 크게 '인간 노무현'을 도운 '인간 천정배'
두 사람간 우정은 오랜 기간 정가에 '신화'처럼 전해져 왔다. '인간 천정배'는 정치에 몸담기 전부터 '인간 노무현'을 높게 평가해왔다. 특히 '지역주의 타파' 노력을 높게 평가해왔다.
천정배는 수도권인 경기 안산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3선의원이나, 그는 호남 골수 토박이다.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목포중, 목포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 사시를 수석입학-차석합격한 세칭 '목포의 천재'다. 그가 본격적으로 '인간 노무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인권단체인 민변 상임이사를 하던 90년대초. 그는 90년 3당 야합에 반대하고 '원칙'을 걷는 노무현에 매료됐다. 노무현은 알다시피 영남 골수 토박이. 천정배는 그러나 출신지역을 개의치 않았다.
천정배는 노무현이 1996년 제15대 총선때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가 낙선하자 다음해 자신의 법무법인 '해마루'에 들어오라 했다. 다음 재도전을 위한 충전 및 경제적 지원을 위해서였다. 노무현은 '해마루'에서 충전한 뒤 1998년 종로 재보선에 도전, 당당히 당선됐다.
천정배는 노무현이 대권 도전의 뜻을 굳히자 가장 먼저 그에 대한 공식 지원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대선 전해인 2001년 여름, 천정배는 부산에 내려가 공개집회에서 노무현 지지를 공식선언했다. 당시는 다음해 질풍노도같은 '노무현 바람'이 불 거라고 누구도 상상치 못한 시점이었다. 대부분이 이인제 주변에 몰려있을 때였다. 그러나 호남 토박이인 천정배는 영남 토박이인 노무현을 현역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지지했다.
천정배는 2003년 노무현이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도 앞장 섰다. 골수 호남으로선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그러나 그는 열린우리당 창당 명분인 '전국정당' 건설에 동의했고 상당수 호남으로부터 "탈레반"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노무현 대통령을 적극 지원했다.
천 의원이 평소 "노대통령이 나에게 빚을 졌으면 졌지, 내가 노 대통령에게 빚진 건 없다"고 말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노무현 대통령과 완전결별한다.
천정배 "알고 보니 노무현은 영남패권주의자였다"
천정배 의원은 왜 노무현 대통령과 결별을 택했나. 뒤늦게나마 남들처럼 '노무현 두들기기'를 통해 대권주자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
지난해 11월말 천 의원을 만나 그의 생각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최대 화두였던 부동산대란이 주제였다. 그는 부동산대란의 심각성과 본질을 알고 있었다. 분양가 폭리를 통해 수천억원을 번 시행업자 횡포도 알고 있었다. "소득이 있는 곳에 반드시 세금이 있어야 한다"며 분양원가 전면공개 지론을 폈고, 분양가 상한제에도 적극 찬성했다. 분양원가 공개에 극력 반대하는 강봉균 등 경제관료 출신들과도 결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2004년 4월 총선직후 "열배 남는 장사도 있는 법"이란 '속류 시장주의'에 기초한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공약 파기를 막지 못한 책임도 뼈저리게 통감했다.
정치 얘기도 했다. 그는 이미 당시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다. 그가 밝힌, 노 대통령에게 가장 절망하는 대목은 노 대통령의 "지역주의 타파" 주장의 허구이자 위선이었다. 그가 '인간 노무현'을 좋아했던 근간이 붕괴된 것이다.
그는 결정적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접하고 십수년간 가졌던 인간 노무현에 대한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했다. 대연정은 "영남 비주류의 영남 주류에 대한 러브콜에 다름 아니다"라고 그는 규정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반성하고 새롭게 만들려는 정당을 노 대통령이 "지역당"으로 매도하며 열린우리당 간판에 연연해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했다. 최종적으로 그가 결론내린 노무현 대통령은 "영남패권주의자"이다.
이것이 천 의원이 밝힌, '인간 천정배'가 '인간 노무현'과 결별을 결심한 근원이다.
"열린우리당 수뇌부도 책임을 져야"
천 의원은 김근태-정동영 등 열린우리당의 이른바 대권주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김근태-정동영 모두를 "열린우리당 실패의 공동책임자"로 규정했다. 대선 출마 운운 자체를 어불성설로 여겼다. 자신을 포함한 이들이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열린우리당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들 대신 '제3 후보'를 생각하고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탈당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연말연초 드러난 노 대통령의 속내를 보고 결단을 내린듯 싶다.
그는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탈당 선언도 냉소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탈당 선언후 흔들리는 열린우리당내 정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차갑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흔들림으로 보기 때문이다.
천 의원은 28일 탈당한다. 동반탈당 의원 숫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원내교섭단체를 꾸리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천 의원 탈당으로 열린우리당, 특히 노 대통령은 치명적 상처를 입게 됐다는 것이다. 그 상처는 다름아닌 '정체성'이다.
/ 박태견 기자 (tgpark@viewsnnews.com)
2007년 1월 28일 (일) 12:05 쿠키뉴스
천정배, “민노당과 함께 할순 없지만 선거협력은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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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정치] 28일 열린우리당 탈당을 선언한 천정배 의원은 신당창당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함께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으며 다만 선거에서 협력을 같이 하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천 의원은 또 이번 탈당을 “개인적인 결단에 따른 것”이라며 선을 그은 뒤 “어느 위치에 있던 간에 노무현 대통령께서 국정 수행을 잘 하시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은 1년기간동안 대통령께서 나라를 전진시키고 민생개혁에 전진을 가져올 지도자로 남길 바라고 그렇게 되는데 일조하겠다”고 덧붙였다.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었던 정동영,김근태 전현직 의장에 대해서 천 의원은 “저와 마찬가지로 (열린우리당)의 위기를 맞이하는데 책임있는 분들”이라며 “앞으로 서로 협력해서 민생개혁의 전진을 가져오는데 전력을 함께 다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도훈 기자
다음은 천 의원과 기자들의 일문일답
-함께하시는분들이 몇분이나 되는지?
“다른 분이 얼마나 더 있는지 제가 단언 할 수 없다. 오늘은 개인적 결단에 따른 것이다”
-대통령과 만남, 통화는 있었나?
“그러지 못했다”
-탈당 여부나 시기를 놓고 고심이 컸던 것으로 아는데 어떤 점이 가장 큰 고민이었나?
“우리당이 아무리 짧게 봐도 5·31 패배 이후 8개월이 다가도록 어떤 형태의 재건방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이제 전대라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를 거치게 되는게 전대를 거치면서도 표류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준비되고 있는 전대가 당초 걱정처럼 미봉으로 가고 그 후에도 표류하며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이란 판단을 굳히게 됐다. 그런 점에서 연초부터 많은 고뇌를 했고 결국 전대 전에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민생 개혁세력의 전진 가져오고 희망가져오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고심을 했는데 결심을 굳힌 계기가 있나?
“뭐 특별한 계기라기 보다도 전대 과정에서, 전에도 말했지만, 이른바 중도파들의 서명이 있었죠, 아, 전대가 새로운 결정, 출발의 기회가 아니라 미봉이고 희망을 못 만들 것 같은 걱정을 시작하게 됐다”
-다른 의원 같이 방향 알고 있는데 얘기가 잘 안됐나?
“그렇지 않다. 자신의 진로에 관해서 많은 논의를 했다. 그러나 탈당의 문제는 개인의 결단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제 자신의 독자적인 결정에 따라 탈당하게 된 것이다”
-이미 탈당한 사람들 있다, 탈당 한다면 그분들과 같이 대안 모색, 상의했나?
“뭐, 오늘은 이 시점에서 뭔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마련하고 준비가 된 상태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길을 위해 벗어나는 것이 먼저. 앞으로 광범위하게 인사를 모으는 노력을 하겠다. 그 중에 당 출신 인사들도 될 수 있다. 어느 누구와도 먼저 나아가야할 방향, 확고한 원칙, 노선, 비전을 따져보고 할 것이다. 그런 원칙이 앞으로 어떤 세력이나 인사와도 함께하는데 적용돼야 한다”
-임종인 의원이 천정배와 민노 아우르는 신당 얘기했는데 구상에 민노당이 들어가나?
“어려운 질문인데요, 민주노동당도 나름대로 민생 위한 정당이죠. 그러나 우리와는, 열린우리당 중심으로 하는 세력과는 비전이 다르지 않습니까. 당을 함께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구요. 다만 선거에서 협력을 같이 하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겠다는 뜻은 아니구요. 당은 차별성있는 당으로 가겠지만 사안에 따라서 모색해볼수도 있는 것 아닌가”
-민주당 탈당 때와 비교하면?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의 미래세력, 한국의 미래를 전진시키고자하는 세력의 재건과 전진을 위해서 제 소신껏 행동해 왔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때와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우리당이라는 틀의 문제가 뭔가?
“열린우리당 자체가 민생개혁 전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 스스로가 거대한 조직을 가지고 있다. 그 조직이 조직의 범위 벗어나는 원칙있는 대통합 위해 걸림돌을 제거해야한다. 그것이 발전적 해체, 창조적 해산이라고 생각한다”
-조직화된 기득권이 열린우리당의 중추적 일하는 사람 지칭한다면, 천정배 의원도 대표, 각료를 지냈던 사람으로 핵심에 서 있지 않았나. 탈당보단 메시지 전하는 게 낫지않나?
“좋은 말이지만 그렇게 해선 가망이 없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민생 개혁 세력의 전진과 재건, 가져올 가망이 우리당 내에서 엿보이지 않는다”
-대통합 신당에서 당원의 위상은?
“그문제에 답변하기 적절치 않다. 대 통합신당 만드는 길은 국민의 뜻을 모아야한다. 저를 중심으로 정당만드는 신당 추구가 아니다. 저 자신도 한알의 밀알이 되겠다는 생각 가지고 있다. 대통합 신당의 과정이 원칙있고, 국민의 참여화라고 볼수 있겠죠, 뜻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야 한다”
-노대통령 신당 판단에 대한 생각? 장기적 전망은?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관계없다. 그 전부터 전대가 미봉가면서 표류하면 다른 길 없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여러차례 해왔다. 그 판단에 변화가 없어 당을 떠나기로 한것이다.12월 대선에서 민생개혁 세력 총 집결해서 전력 다할 것이다”
-남는 사람, 나가는 사람도 시민세력 연합에 대해 말하는데?
“남는 분이나 저나 목표에는 다르지 않을 것. 그러나 당의 현실, 위상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다른 것 아닌가. 당을 사수하는 분들 나름대로 노력하시고, 저처럼 안된다고 믿는 사람은 밖에서 노력해 선의의 경쟁을 해서 최종적으로 함께 만나는 길 모색하는 것이 민생개혁 전체를 위해서도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원내교섭단체 교두보가 중요한데, 2월 중순 이전에 교섭단체 노력한다는데 그런 생각 있는지? 가능성은?
“그런 생각까진 해보지 않았다. 그건 크게 중요치 않을 것 같다. 물론 국회의원들이 새로운 길 모색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은 국회 의정활동을 해야하는게 그것을 위해 여러 조건을 만드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그게 결정적인 것은 아니고 대통합신당이 이미 기성의 정치인들, 국회의원만 중심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열린당 소속 의원인 사람들은 책임을 인정하고 주도권 한계도 인정하고 밖의 사람들, 새로운 역량을 보충받기 위해서 자신들의 위상 권한에 대해 양보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내일 중앙위가 소집된다. 내일 중앙위와 관련성?
“크게 관련이 없다. 저는 중앙위에 대해선, 의제가 기초당원제인데 기초당원제냐 아니냐는 당으로선 중요하지만 탈당이냐 당 사수냐를 좌우하는 핵심 주제는 아니라고 오래 전부터 이야기해왔다”
-기득권 양보라고 하는데 대권 주자들은 지지율이 2∼3%인데 오픈프라이머리 하면 기득권버린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생각하는 기득권 버리는 것은?
“그 정신을 이야기하는 거다. 큰 민생 개혁 세상 대의를 위해선 개인적인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것은 지금 말씀드리기 적절치 않다”
-2주간 어떤 노력했고, 전대 미봉안되게 어떤 노력했는지, 또 나가서 인사 모으겠다고 했는데 누구를 생각하고 있나?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전대 준비위 결정내려지고 전격적으로 비대위의 회의가 있었다. 그 때 비관적인 생각했지만 여러 사람과 접촉하면서 노력했다. 누구를 접촉하느냐는 제가 주도해서 이런 저런 인사를 모으겠다는 것은, 그런 노력을 해야겠지만, 저를 중심으로 할 수 있단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좋은 사람들을 접촉해가면서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정치권 있는 사람뿐 아니라 밖에 있는 분들이 더 많은 정치적인 의지를 가지고 나설 수 있도록 분위기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천정배와 노무현은 3번 운명적 접점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야인 시절, 변호사 시절…. 영·호남 융합 대통령 명분과 정체성, 열린당 창당 과정을 주도해오지 않았나. 오늘은 대통령과 결별을 의미하는데 덕담할 거 있나?
“어느 위치에 있든 간에 대통령께서 국정 수행 잘 하시도록 최선 다해 돕겠다. 개인적 도리나 제 자신이 총선에서 여당의원으로서 국민의 신임 얻은 정치적 도리로써도 그래야 한다. 1년 기간동안 대통령께서 나라를 전진시키고 민생 개혁 전진 가져올 지도자로 남길 바라고 그렇게 되는데 일조하겠다”
-3년 전에 개혁정치 표방하며 창당. 지금은 민생 개혁 모토로 탈당. 그동안 장관, 원내대표 등 . 3년 밖에 안 지났다. 너무 이른 판단이란 비판도 있는데?
“창당 앞장선 사람이 탈당하는 것엔 면목이 없다. 그러나 잘못된 것 시인하고 앞으로 잘 되도록 하는게 정치인으로서 진정 책임있는 자세라고 믿는다. 시간이 짧다 길다를 떠나 현재 열린우리당 틀에 갇혀서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민주당 일부는 여당 창당 세력에 대해 부정적인데 본인 거취에 대해서?
“대의를 위해서라면 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그런 자세로 정치하려고 노력해왔고, 더더욱 그런 자세 노력하겠다”
-개혁세력을 표방하고 있는데, 신기남 의원은 신당 여러 개 생길 것 같다고 하는데 구상하는게 각각 정체성 가진 신당 만들어 노선 경쟁으로 대통합 그림인가?
“구체적 그림, 말할 단계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뚜렷하다. 대통합을 가야. 그게 잡탕 세력의 통합일 수는 없다. 원칙, 미래지향적이고 정치 대통합에 , 국민적 대통합을 이뤄가는, 민생 안정과 국민 안정 이뤄가는 크게 결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주된 관심사다. 그런 목표 위한 여러가지 과정은 지름길도 있겠고, 경우에 따라 우회로가 올바른 길일수도 있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과 지혜 모아가면서 모색할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고언이나 바람?
“아까 드린 말씀으로 충분할 듯하다”
-국회의원 된 뒤로 고향방문했나?
“고향이야 자주 가죠. 재보궐 지원 가기도 하고. 많이 갔다”
-정동영, 김근태 의장에 하고 싶은말?
“특별히 없는데, 전·현직 의장은 민생개혁 세력 통합에 귀중한 자산이다. 한편으로는 저와 마찬가지로 당 위기에 대해 책임있는 분들이시기도 하다. 앞으로 서로 협력해서 민생개혁의 전진 가져오는데 전력을 함께 전력을 다할 수 있으면…. 그렇게 되리라 확신한다”
-이번이 네번째 당적이 될 텐데, 이런 것이 정치발전 저해되지 않나?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일들이 한국의 정치가 생산적 정치로 나가기 위해 풀어야할 시행착오, 성장통인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그동안의 경험, 시행착오들로부터 교훈을 얻어서 튼튼하고 오래 갈 수 있는 정당을 만들고, 그런 정당원으로서 정치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단기적으로 당을 만드는거죠?
“구체적인 생각은 안한다. 어떻게 할 지는 많은 분들과 토론도 하고 힘을 모아야 할 듯. 당면의 목표는 12월 대선 아니겠나. 승리 위한 대통합 이룰 목표를 중심으로 다른 모든 일을 배치할 것이다”
-우리당 중도 실용파와는?
“앞으로 정치 세력을 모으고 신당 만드는 과정은 먼저 우리가 뭘 할께 할 것인지 모선, 비전, 토론과 과정이 있고 거기서. 사람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 전력이 도저히 민생개혁 대의에 동참하기 어려운 사람이 예외적으로 있겠지만, 제가 말씀드린 것은 사람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세우고 노선 분명히 하는 가운데 당을 만드는 것이 옳은 것이고, 그동안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정리=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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